엿·조청 강봉석 명인: 자연을 품은 정직한 단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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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23-07-31
내용

예로부터 자연에서 나는 꿀을 청(淸)이라 하였고, 

조청(造淸)은 ‘사람이 만든 꿀’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설탕이나 인공 감미료가 따라올 수 없는, 자연 그대로의 정직한 단맛을 품고 있는 것이 조청이죠. 
대를 이어 우리 전통의 단맛을 지켜오고 있는 강봉석 명인을 만나보았습니다.




할아버지가 입에 물려주시던 그 맛


단맛에 끌리는 것은 인간의 본능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선사시대부터 꿀을 먹은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단맛은 아무나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었어요. 양봉업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에 꿀은 너무나도 귀했고, 설탕도 산업화 이후에나 대중에게 보급되기 시작했지요. 이렇게 꿀과 설탕이 귀했던 시절, 우리 민족에게 단맛의 즐거움을 선사해 준 것이 바로 조청입니다.


조청의 재료는 전분을 함유한 곡물과 엿기름을 내는 보리입니다. 재료는 더할 나위 없이 간단하지만 깊은 맛을 내기 위해서는 상당한 인내와 끈기가 필요해요. 주재료가 되는 엿기름을 내는 데만 보름의 시간이 걸리고 뜨거운 아궁이 앞에서 꼬박 6시간을 쉬지 않고 저어주어야 비로소 조청이 만들어집니다.


올해로 81세인 강봉석 명인이 만드는 조청은 백여 년 전 할아버지가 만들던 전통 가마솥 방식을 그대로 고수하며 만들어져 특유의 구수하고 깊은 맛이 느껴져요. 압력솥에서 지은 밥이 가마솥 밥맛을 따라올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죠. 시대가 변하며 가마솥은 액화 솥, 엿 틀은 압착기, 엿댕기는 자동 엿댕기 등으로 현대화되었지만 조청을 만드는 과정만큼은 옛날 방식 그대롭니다.


"지금도 매일 아침 10시면 공장에 나가 직접 조청 맛을 봐요. 
어렸을 적 할아버지가 입에 물려주시던 첫 조청으로 만든 엿가락의 맛이 나야 하거든요.
제대로 된 맛이 안 날 때면 이따금씩 직원들을 혼내기도 하는데,
이 맛을 지키는 게 결국 우리 전통의 맛을 지키는 거니까 허투루 할 수 없어요."

명인은 단순히 음식 맛을 내기 위한 단맛이 아닌, 전통이 살아 있는 건강한 단맛을 고집합니다.

그의 손길에는 수십 년의 세월 동안 타협하지 않고 묵묵히 걸어온 맛에 대한 자부심이 서려 있습니다.




5대가 잇는 가업의 가치


조청 만들기는 자자손손 대를 이어 내려온 집안의 가업입니다. 명인의 할아버지는 1905년 무렵부터 당시 개성장터 오일장이 열릴 때면 집에서 손수 만든 엿을 내다 팔곤 했어요. 이후 명인의 아버지가 제조 비법을 이어받았고, 강봉석 명인도 어려서부터 아버지를 도우며 자연스럽게 가업을 잇는 일에 몸담게 됐습니다. 그러던 중 한국전쟁이 발발하여 가업이 끊길 뻔한 적도 있지만, 우여곡절 끝에 지금의 충주에 터를 잡고 본격적으로 엿과 조청을 만들기 시작했지요.


가내수공업 형태로 제조되었던 조청은 강봉석 명인이 본격적으로 가업에 뛰어들며 체계화되기 시작했어요. 1980년 충주시 문화동에 ‘제일엿공장’을 세운 후, 지속적인 제품 개발과 상품화를 이루어 나갔고 이런 노력과 가치를 인정받아 2008년에는 엿·조청 분야 최초의 대한민국 식품명인으로 지정됐습니다.


"어릴 때부터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땔감을 구해 지게를 지고 다니며 정말 많은 고생을 했어요.
땔감이 없는 날엔 기찻길에 흩어진 석탄을 주워 오기도 했고요.
숱한 역경의 나날이었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든 적도 있지만,
이제는 제가 만든 조청이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것 같아 참으로 뿌듯합니다."

대를 잇는 가업은 명인의 아들과 손자 세대까지 이어져 5대째 계승되고 있어요. 명인의 아들 강철은 식품명인 전수자가 되어 전통 조청의 명맥을 이어 나가고 있고, 손자와 손녀는 온라인을 통한 해외 수출로 판로를 넓히고 있지요. 최근에는 미국의 온라인 쇼핑몰 아마존을 통해 10만 불 매출을 달성하기도 했어요. 이 모든 것이 조청에 대한 명인의 집념과 열정이 자손들에게 전해졌기에 가능했습니다.




후대까지 이어지는 건강한 맛


최근 건강한 식생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설탕 대신 ‘건강한 단맛’을 찾는 손길도 늘고 있습니다. 희소식으로 들리지만 이 자리를 흔히 대체당이라 불리는 감미료가 빠르게 채우고 있어 전통의 단맛이 점차 잊히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강봉석 명인은 후대에 조청의 가치를 전하기 위해 어린이와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전통 조청 체험관 운영’, ‘조청 기업 기술 전수’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 오고 있어요. 조청을 만드는 다른 업체에서 명인의 제조비법을 알고 싶다는 부탁에 직접 공장에 찾아가 기술을 전수해 준 적도 있지요. 전통의 맛을 지켜야 한다는 굳은 신념이 없었다면 그 누구라도 쉽사리 엄두 내지 못할 일입니다.


"대한민국 식품명인 자격 조건 중의 하나가 바로 '전통의 보존과 기술의 전수'예요.
당장의 이익보다는 우리의 맛을 지키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지요.
우리의 좋은 것을 잘 알고 발전시키는 게 곧 국력이고
전통을 이어 나가는 소중한 밑거름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우리의 좋은 것을 잘 알고 발전시키는 게 곧 국력이자 전통을 이어나가는 소중한 밑거름


‘꺾이지 않는 집념’ 하나로 조청에 모든 것을 바쳐온 강봉석 명인. 그의 생애에 이루고 싶은 마지막 목표를 물어봤습니다.


"명인으로서 마지막 바람이 있다면, 제 후손들이 기업을 잘 가꾸어 나가는 거예요.
이를 발판 삼아 우리의 우수한 조청을 전 세계인이 즐길 수 있으면 좋겠어요."

이제는 후대로 이어지며 현대의 새로움과 만나 더욱 그윽하게 빚어지는 명인의 조청.

그 달콤함 속에서 우리가 계승해 나아가야 할 전통의 맛이 무엇인지 답을 찾아봅니다.




강봉석 명인의 조청 만들기



1. 보리 발아

깨끗이 씻은 보리를 물에 담고 건조하는 과정을 반복하며 싹을 1~1.5cm 정도 발아시킨다.



2. 엿기름 제조

싹이 난 겉보리를 넓게 펴 건조한 후, 잘 비벼 뿌리와 싹을 제거한다.

이후 디딜방아에 곱게 빻아준다.



3. 고두밥 짓기

찹쌀이나 멥쌀을 충분히 불린 다음 시루에 쪄내 고두밥을 짓는다.

이때 김이 새어 나가지 못하도록 멥쌀가루로 만든 '시룻법'을 솥과 시루의 이음새 사이에 잘 붙여준다.



4. 당화

가마솥에 엿기름물과 고두밥을 물에 함께 섞어주고, 약한 불로 10시간 정도 삭힌다.



5. 거르기(엿물 짜기)

잘 삭혀진 엿물을 베주머니나 체에 밭쳐 엿물을 짜낸다.



6. 졸이기(조청 만들기)

엿물을 다시 가마솥에 넣고 끓이며, 서로 눌어붙지 않도록 계속해서 주걱으로 저어준다.

엿물 위에 막이 생길 때까지 끓이면 조청이 완성된다.


글 차주익 사진 박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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