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의 삶 배려한 선비의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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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22-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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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매오로시 사람살이를 고스란히 담는다. 비단이 재산의 척도이던 시절, 누에의 먹이인 뽕잎을 얻기 위해 키운 뽕나무도 그런 나무이건만 세월 흐르며 뽕나무 찾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우리나라의 뽕나무 가운데에 가장 크고 아름다운 나무는 단연 강원 정선군청 앞에 서 있는 한 쌍의 뽕나무다

나무를 심은 사람은 단종 때에 호조참판을 지내던 제주 고씨 중시조 고순창이다. 단종 폐위와 함께 낙향한 그는 살림집을 짓고 대문 앞에 한 쌍의 뽕나무를 심었다. 소나무 회화나무처럼 학문과 권력 혹은 부의 상징으로 여겨온 나무들과 달리 남녀상열지사의 상징이거나 나무 이름 때문에 웃음거리가 되기 십상인 뽕나무를 선택했다.

그가 새로 살림터를 잡은 정선 지역은 고려 때부터 ‘상마십리(桑麻十里)’라고 표현할 정도로 뽕나무를 많이 키운 고장이다. 국부(國富)의 바탕인 비단을 키워내는 고장이었다는 이야기다. 벼슬은 내려놓았지만, 백성의 살림에 대한 생각을 내려놓을 수 없었던 선비 고순창은 백성들과 같은 자리, 어쩌면 가장 낮은 자리의 백성들과 함께하겠다는 배려심에서 뽕나무를 선택한 것이다.

그로부터 500년 넘는 긴 세월 동안 뽕나무는 후손들과 마을에서 정성껏 보살피며 마을 역사의 상징이 됐다. 두 그루의 뽕나무는 높이 25m, 가슴높이 줄기둘레가 3m에 이르는 거목으로 살아남았다.

나무는 사람들의 정성된 보살핌 덕에 규모만 장대한 게 아니라, 아름다움은 물론이고 선비의 기품까지 갖췄다.

마침내 나무는 ‘정선 봉양리 뽕나무’라는 이름으로 지난해 12월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생물학적 가치부터 짚어보게 되는 나무에 인문학적 가치가 더해지면서 소중한 자연유산으로 남게 됐다.


이틀 뒤인 20일에는 나무 앞에서 천연기념물 지정 기념식을 한다. 백성과 같은 자리에서 백성의 살림살이를 먼저 배려한 옛 선비의 너그러운 마음과 함께 나무도 오래도록 건강하게 살아가기를 바란다.

경향신문 고규홍 나무 칼럼니스트

* 기사, 썸네일이미지 출처: https://www.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2101803000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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