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오스크는 고문기계”…세상은 변한다, 노인들이 못 쫓아오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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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22-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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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제 손가락을 잘 보세요. 이렇게 살짝 터치하는 거예요. ‘내가 누르기만 하면 이상한 게 뜬다’고 무서워하셨던 분도 계시죠? 버튼처럼 꾹꾹 누르면 안 됩니다. 그림만 정확하게 터치하세요. 키오스크는 터치 화면이라는 걸 잊으시면 안 돼요.”

지난 9월13일 오후 서울 마포구 시립노인종합복지관에서 키오스크 강좌의 3학기 첫 수업이 시작됐다. 실제와 똑같은 키오스크를 앞에 두고 강사가 사용법을 설명하자 희끗희끗한 머리에 돋보기를 낀 70~80대 학생들이 내용을 꼼꼼하게 노트에 적었다. 아직은 손글씨가 가장 편하다. 중요한 부분은 형광펜으로 밑줄을 그었다.

“당장 화면에 안 보인다고 ‘왜 이것밖에 없어’라고 하지 마시고, 화살표 버튼을 눌러 위아래에서 찾으세요. 글씨 읽는 게 힘들겠지만 설명은 잘 보셔야 해요.”

2년여 만에 대면 활동이 재개된 도시 곳곳에는 ‘신문물’이 투명장벽처럼 도사리고 있다. 디지털 낙오자에게 걸림돌은 식음료 주문만이 아니다. 식당·영화 예약, 택시 승차의 기회도 빼앗긴다. 경제활동을 위한 기능적 공간인 도시는 성장을 목표로 한 기술혁신의 장이다. 빠른 변화와 적응이 경쟁력인 공간에서 낯선 이에게 무언가를 물어보는 일은 금기에 가깝다.

도시 고령화가 사회문제로 이어지는 것은 공간과 구성원 간 부조화 탓이다. 역사상 지금처럼 많은 노인이 도시에 산 적은 없다.

전 세계 대도시 인구의 5명 중 1명이 만 65세 이상이며 서울 시민의 중위연령은 이미 42.8세다. 예정대로면 2050년 한국인의 37%가 노인이 된다. 하지만 전례없이 길어진 은퇴 이후의 시간을 꾸려갈 자원과 상상력은 부족하다. 노인 부양을 맡았던 가족과 이웃도 해체됐다. 인구 3분의 1이 노인이 될 숙명을 도시는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는가.

키오스크와의 고군분투
복지관, 노인대학, 동주민센터 등에서 최근 인기가 많은 고령층의 키오스크 수업은 보통 5~6주, 길게는 12주 과정이다. 화면에 뜬 아이콘을 찾아 누르는 게 전부인데 12차례나 뭘 가르칠 게 있을까. 의구심은 복지관 수업이 ‘터치법’으로 시작되는 것을 보며 풀렸다. 태어나자마자 화면을 손가락으로 쓸어내려 잠금을 풀 줄 아는 요즘 아이들이 ‘터치 네이티브’라면, 노인들에게 ‘터치’는 여전히 어색한 동작이다. 게다가 말 몇 마디로 끝날 주문을 수십가지 선택지를 늘어놓고 고르게 한다. 어르신들은 키오스크를 ‘고문기계’로 부른다고 했다.

이날 강사는 어르신들에게 “키오스크는 매장마다 다르니 설명을 잘 읽어야 한다”고 몇 번을 당부했다. 글씨가 작아 읽기 힘들어도 꼭 확인하라는 말과 함께.

“기계가 포장할 건지 먼저 물을 수도 있고, 메뉴를 먼저 고르라고 할 수도 있어요. 보면서 그대로 따라가셔요. 하고 싶은 걸 먼저 하겠다고 우겨선 안 돼요. 직원에게 주문할 땐 ‘드시고 가시나요?’ 물어봐도 ‘김밥 세 줄 주세요’ 하고 다음에 답할 수도 있지만 기계에 ‘난 김밥 먹을 거라고’ 해봐야 소용없어요.”

고령층이 키오스크를 두려워하는 건 기계와 대화한다는 점이다. 엉뚱한 걸 결제할까 봐 겁이 나는데 ‘무인’이라 물어볼 사람도 없다. 전국 외식업체 중 4.5%(농림축산식품부, 2021년)가 키오스크를 쓰는데 서울에서는 평균의 2배 가까운 8.8%가 사용 중이다. 피자·햄버거·샌드위치 업종만 보면 16.7%나 된다. 김밥 등 간이음식점(11%)과 포장 판매 전문점(6.5%)의 도입률도 높은 편이다.

“주문을 못하고 매장을 나온 적도 있죠. 밖에서 보고 키오스크만 있으면 안 들어가요. 겁이 나서요. 정할 건 많은데 뒤에 줄이 서 있으니 마음은 급해지고…. 혼동되면 더 못해요. ‘미안한데 이 다음을 모르겠다’며 뒷사람의 도움을 받기도 했어요. 바쁠 땐 나 때문에 방해될까 미안해서 시도도 안 해요.”

김중현씨(80)는 집 근처 신촌에서 지나쳤던 수많은 커피숍, 식당, 디저트 가게를 떠올리며 수업을 신청했다고 한다. 커피숍을 운영하며 반평생을 보낸 이 번화가가 그토록 생경한 공간이 될 줄은 몰랐다.

수업이 끝나고 그와 복지관 앞 커피숍에 갔다. 키오스크가 2대나 설치된 바쁘게 운영되는 매장이었다. 배운 내용을 떠올리며 음료를 주문해보기로 했다. 잠시 당황했던 손이 화면 상단의 메뉴 버튼을 하나씩 눌러 커피 카테고리를 찾았다. ‘아메리카노’에서 ‘HOT’, ‘샷 추가 없음’ ‘매장컵’을 차례로 선택한 뒤 장바구니에 담았다. 드디어 마지막 결제 단계. ‘카드’를 누르고 신용카드를 투입구에 넣었다. 강사가 ‘주문의 증거’라며 잘 가지고 있어야 한다던 영수증도 챙겼다. 조금 느리지만 완벽한 주문이었다.

“지나갈 때마다 들어오고 싶었는데 문 앞에 키오스크가 있잖아요. 그냥 지나쳤죠. 생각보다 쉬운 것 같긴 한데, 다음에 나 혼자서도 잘할 수 있겠죠?”

공교육에서 컴퓨터 과목을 가르치기 시작한 1990년대, 김중현씨는 이미 50대였다. 일부러 비싼 사교육을 받지 않았다면 생애주기에 정보기술과 관련한 배움의 기회를 얻기 어려웠다는 의미다. 정보 소외계층 가운데 장애인·저소득층·농어민보다 고령층의 디지털 격차가 큰 이유다. 70대 이상의 정보화 수준은 한국인 평균의 46.6%에 그친다. 서울에 그와 같은 80대 이상 인구는 3.7%, 약 35만명이다.

“나이가 80이면 사회에서 설 자리가 없잖아요. 그런 데다 세상까지 못 따라가니 어떻게 하나…. 생각하면 굉장히 외로워져요. 적응이 안 되니까 자신감도 잃게 되죠. 옛날에는 ‘못한다’ ‘안 된다’는 걸 못 느꼈어요. ‘다른 사람도 하는데 왜 못하나’ 이런 마음으로 평생 세상을 따라 살았거든요. 지금은 시대나 문화가 너무 빨리 변해 전혀 따라가지 못하겠어요. 자꾸 포기하게 되니 답답해서 혼자 울기도 해요. 저한테 이런 게 너무 큰 장벽이에요.”

산업화 이후 사회에 진출한 50~60대는 어떨까. 70대 이상 고령층보다는 기술 적응도가 높지만 교육의 부재는 마찬가지다. 서울시50플러스재단의 조사를 보면 1955~1963년생 서울 시민은 대부분이 디지털 기기 사용법을 가족·친구·지인·회사 동료 등(100.8%, 중복선택)에게 어깨너머로 배웠다고 했다.

도시의 속도에 밀려난 이들이 퇴적된 공간
시대에 적응하지 못한 이들은 도시의 가장자리로 밀려난다. 고 오근재 홍익대 교수는 은퇴한 뒤 느낀 상실감을 기록한 책 <퇴적공간>에서 “가정과 도시의 속도가 주는 소멸이라는 이름의 추방”을 당한 노인들이 모인 “도피성 공간”을 ‘퇴적공간’이라고 정의했다. 종로의 탑골공원 등지가 대표적이다.

지난 9월7일 오후, 태풍이 지나가고 며칠 만에 날이 갠 서울 종묘시민광장의 나무 그늘에서 ‘딱, 딱’ 소리가 들렸다. 심각한 표정으로 바둑판을 마주하고 앉은 두 사람 곁에 구경꾼들이 서 있다. 군데군데 20여곳, 족히 100명이 넘는 중년·고령 남성들이다.

같은 시각 500m 떨어진 곳에 있는 탑골공원 담장 밖도 비슷한 풍경이다. 30여개 장기판을 둘러싸고 200명 넘는 인파가 와글와글 모여있다. 바둑·장기판의 사설 대여는 불법이지만 바둑이나 장기를 두는 노인들은 종로의 상징이 됐다. 1990년대 말 외환위기 때 한 끼 식사를 해결하려 원각사 무료급식소를 찾는 빈곤한 고령층이 급증했다.

지하철 탑승이 무료인 이들에게 3개 노선이 지나는 종로3가역은 어디서든 접근하기 좋았다. 이후 안국동에 서울노인복지센터가 생겼고, 다양한 복지·문화 서비스가 제공되는 ‘실버들의 홍대 앞’이 형성됐다.

물가도 노인들에게 맞춰 과거에 머물러 있다. 국밥집 우거지 해장국은 2500원, 이발소의 커트·염색은 지금도 각 6000원씩이다. 커피, 율무차를 200~300원에 마실 수 있는 자판기도 많다. 머리에 염색약을 바른 채 커피 한잔을 들고 공원 담장에서 장기 시합을 곁눈질하는 게 탑골공원 어르신들의 일상이다. 고물상까지 있어 폐지를 싣고 와 팔 수도 있다.

이런 풍경을 두고 “생애 화려했던 시절의 무대로 다시 찾아와 동년배를 만나고 다른 곳에서는 누릴 수 없는 사회·문화적 욕구들을 해소”하는 것이라는 분석(서울시립대, 종로 노인문화 활성화 방안에 관한 연구)도 있다.

하지만 소비력에 따라 차별화된 경험을 제공하는 도시는 노인의 공간도 양극화한다. 수입이 없거나 적은 고령층을 값싼 물가로 유인하는 종로의 다른 한편에는 예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한 식당과 커피숍이 자리하고 있다. 한 사람당 1만원 이상은 필요한 가게들이다. 키오스크 없이 직원이 직접 주문을 받는 패스트푸드점도 지불 능력이 있는 노인들을 공략한다. 서울연구원이 발간한 <노인을 위한 동네>에 참여한 안현찬 연구위원은 “은퇴 후 주된 소득이 없을 때의 경제적 차이는 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더 클 수도 있다”고 말했다.

역사상 가장 긴 노년,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노령기는 흔히 ‘일하지 않고 사회의 돌봄을 받는 나이’로 정의된다. 운이 좋으면 60세까지 일하다 정년퇴직해 65세에 ‘법적 노인’이 되면 각종 혜택이 시작된다. 하지만 실제 일을 하지 않는 노년은 길지 않다. 한국인의 ‘진짜 은퇴’는 평균 72.3세로 일본(70.8세) 등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늦다.

은퇴하고 다시 일하는 모순은 고령층의 상대적 빈곤율(처분가능소득의 중위소득 50% 기준)이 38.9%(통계청, 2020년 기준)로 다른 연령대의 2배인 현실에서 기인한다. 도시사회학자 소준철 박사는 재활용품을 수집해 생활하는 노인들의 생애를 바탕으로 도시 빈곤을 분석한 <가난의 문법>에서 이 모순에 대해 언급한다. “도시 노인들에게 노후 생활의 경제적 기반이 없다는 뜻이며 노인 노동은 대부분 질 낮은 일자리여서 노인 고용률이 높아진다고 노인 빈곤율이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한국보다 먼저 고령화가 시작된 나라들처럼 정년을 연장하거나 폐지해 나이에 따른 노동 차별을 없애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받는다. 실제로 취재 과정에서 만난 60~70대들은 “지금 가장 필요한 건 일”이라고 했다. 특히 2022년의 기대수명은 83세. 역사상 가장 긴 노후는 은퇴 전에 설계해 놓은 계획마저 쉽게 무력화한다.

지난 8월29일 서울 마포구 한 고시원에서 만난 김주철씨(67)는 여느 베이비붐 세대처럼 정년이 보장된 회사에서 일했다. 결혼해 두 아이를 낳아 대학까지 보냈다. 평탄한 인생에 굴곡이 생긴 것은 정년을 앞둔 때였다. 퇴직금으로 사업을 해보자는 말에 욕심이 생겼다. 노후를 더 풍요롭게 하고 싶기도 했다.

“사기를 당했죠. 원한이 쌓이니 벗어나기 힘들더라고요. 나이라도 젊으면 나았을까. 한순간에 무너지고 계속 수렁에 빠지는 느낌이에요.”

장사로 재기를 꾀했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5년 전 배우자와 이혼하면서 자식들과도 연락이 끊겨 고시원에서 홀로 산다. 각종 약을 먹기 위해 세 끼는 챙기지만 누군가와 함께 밥을 먹는 일은 드물다. 매달 받는 기초생활수급비 90만원에서 월세 42만원을 내고 나머지로 병원비와 약값, 통신비를 내며 생활한다.

“일하고 싶죠. 일하면 수급비보다는 더 벌 텐데…. 그런데 몸이 아프면 아무 일이나 할 수도 없어요. 청소는 암묵적인 정년이 있어서 일흔 넘으면 안 써줘요.”

빈곤을 연구하는 일본 사회운동가 후지타 다카노리는 일본 고령층의 경제적 붕괴를 전망하며 2015년 <2020 하류노인이 온다>라는 책을 썼다. ‘하류노인’은 생계급여 수준의 소득으로 사는 고령자다. 후지타는 “노후에 ‘수입·저축·관계’가 사라지면 빈곤에 빠질 수 있다”며 “가족과 지역이 사라지고 물리적, 정신적, 경제적으로 고립화된 것이 지금 노인의 실태”라고 경고했다.

서울보다 생활비 부담이 작은 지방 이주가 대안으로 제시되기도 한다. 하지만 의지만으로 가능한 일은 아니다. 김주철씨는 “은퇴 후 시골에서 텃밭 일구며 연금으로 사는 걸 누구나 꿈꾸지 않느냐”면서도 “지금 내 사정으로는 불가능하다”고 했다. 내과, 안과, 정신과 치료로 한 달에 두세 번 대학병원에 가야 하는 현실적 문제도 있다.

특히 신체적 퇴화는 고령층의 생활 반경을 대폭 축소시킨다. 사는 곳, 일하는 곳, 노는 곳이 제각각인 청·장년층과는 달리 노인의 삶은 행정구역으로 치면 동 단위 수준으로 좁다. 오랜 세월 익숙해진 반경 안에서 원하는 삶을 추구할 수 있는지가 노년의 행복을 좌우하는 이유다.

노원의 ‘돌봄 공동체’ 실험…진짜 필요한 건 ‘동네에서 함께’
“곧 여든인 아버지가 어느 날 ‘더 늙고, 치매라도 걸리면 요양원으로 보낼 거냐’고 물으셨어요. 병들어 움직이지 못하게 되더라도 살던 집에서 동네를 떠나지 않고 싶다고 하셨죠. 하루 한 번 자식, 손주 얼굴은 봤던 옛날 고려장보다 못한 게 요양원이라고 하시면서요.”

서울 노원구 상계주공7단지에서 만난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함께걸음’의 강봉심 이사는 이미 50대에 아버지와 같은 고민이 시작됐다고 했다. 부모의 간병, 본인의 노후 부담이 동시에 밀려드는 때이기도 하다. 은퇴 때까지 남은 십수년 안에 얼마나 준비할 수 있을까.

“방법은 두 가지죠. 건강한 상태로 최대한 지내다가 잠을 자듯 죽는 게 최선이고요. 아니면 아버지 말씀처럼 건강하지 않아도 마을 돌봄에 의지해 여태껏 살아왔고, 앞으로도 계속 살고 싶은 공간에서 생활하다 죽는 거예요. 어쩌면 둘 다 할 수도 있지요.”

가족 대신 사회복지가 노인 ‘봉양’을 맡게 되면서 각종 노인 시설이 생겨났다. 경로당은 서울에만 총 3400여개, 노인복지관은 80여개가 운영 중이다. 노인성 질환이 있거나 만 65세 이상의 건강을 관리하는 요양병원(요양원)은 대안 돌봄으로 자리 잡아 서울에만 120여곳, 경기·인천 등 수도권에 540여곳이 운영 중이다. 수요 감소로 폐업한 어린이집, 결혼식장이 요양원으로 바뀌는 일도 흔해졌다.

도시는 장애와 마찬가지로 노화된 신체를 격리된 공간에서 관리한다. 하지만 거동이 불편해져 누워서만 지낸다고 해도 노인이 가장 편안함을 느끼는 곳은 ‘내 집’ ‘우리 동네’다. ‘살던 곳에서 늙어가기’(Aging in Place)라는 학술용어가 정립된 것은 먼저 시행착오를 겪은 도시와 공동체가 이를 궁극적으로 행복한 노후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강 이사는 오랜 세월 함께 활동한 조합원들과 ‘어르신휴센터’라는 이름으로 ‘동네에서 늙어가기’ 실험을 하고 있다. 나이가 덜 든 주민이 더 나이 든 주민들을 돌보는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다. 40~70대 ‘건강리더’가 소모임을 만들면 70~90대 어르신들이 참여해 일상을 보낸다. 함께 동네 걷기, 요리해 나누기, 기억·인지력 향상을 위한 종이접기, 보드게임, 한글교실 등 소모임은 갖가지다. 활동에 필요한 인건비·재료비 등은 구청의 지원을 받지만 모임의 기획부터 실행, 참여까지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시간을 내 공들여 준비한다. 이유는 하나다.

‘동네 어르신들이 건강하고 재미있는 일상을 보내고 있다면, 내가 노인이 됐을 때도 동네에서 재밌게 살고 있을 것이다.’

노인 복지의 선진국인 북유럽과 일본 등에서는 ‘하류노인’이 되는 것을 막고 삶의 마지막까지 ‘나답게’ 살기 위한 해법으로 지역의 느슨한 공동체를 꼽는다. 신문기자였던 오쿠마 유키코는 1980년대 북유럽 노인들의 모습을 보고 당시 처참했던 일본의 현실을 통탄하며 <노인복지혁명>을 썼다. 40여년 전 고령화 문제를 고민하던 일본인을 충격에 빠뜨린 모습은 ‘몸을 가누지 못해도, 대소변을 못 가려도 휠체어에 앉아 자신의 집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24시간을 보내는’ 스웨덴과 덴마크 노인의 일상이었다.

당시 북유럽은 신체 능력과 상관없이 자택에서 여생을 보낼 수 있도록 노인 복지의 방향을 전환하면서 고령층의 ‘잔존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게 하는 데 정책의 초점을 맞췄다. 시설에서 수발을 드는 대신 집에서 생활하며 필요할 때 언제든 동네 주민을 부를 수 있도록 시스템을 바꿨다. 침대에 누워 종일 천장만 바라보다 죽는 1990년대 일본의 노인과 극적으로 대비됐던 이 장면은 2022년 한국의 요양병원과 겹친다.

2019년 노원에서 어르신휴센터가 구성된 이후 동네 주민과 어르신들은 수시로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제 어르신이 안 보이면 집으로 찾아가 안부를 묻고, 아프면 서로를 보살핀다. 노인들에게 소모임 활동은 주기적으로 몸을 움직이는 기회이자 수십년간 인사도 없이 지냈던 이웃과 사귀는 기회가 됐다.

“모임을 준비하는 50~60대 건강 리더들도 활동에 적극적이죠. 직장에서 은퇴하고도 성취감을 느낄 일을 찾았잖아요. 또 자신의 미래에 대한 준비이기도 해요. 내가 사는 동네에서 도움받고, 도울 수 있다는 게 가장 좋고요.”(강봉심)

나이가 들어서도 나의 삶의 터전인 도시에서 생활의 주도권을 놓지 않고 살아가는 일상은 누구나 소망하는 노후다. 내 미래가 그렇게 되려면 지금 우리 주변의 노인들이 그렇게 살고 있어야 한다.

경향신문 박민규 선임기자

* 기사, 썸네일이미지 출처: https://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21018060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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