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란 '똑똑한 씨앗' 뿌렸다…'디지털 농업' 꽃이 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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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22-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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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이 운영하고 있는 농업유전자원센터에서 연구원들이 최첨단 스마트팜 시설에서 데이터에 기반한 작물 재배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익산역에서 자동차로 30분 정도 걸려 도착한 전북 완주군 현가농장. 김대만 대표가 재배면적 850평짜리 비닐온실에서 토마토를 기르는 곳이다. 봄이 되면서 일사량이 늘어나자 토마토가 줄기마다 주렁주렁 달렸다. 작년 8월에 심어 10월 중순부터 수확을 시작했지만 이제부터 수확량이 본격적으로 늘어난다.


이 농장에서 수확하는 토마토는 연간 85t이다. 연간 판매금액은 대략 2억원, 순이익은 7000만~8000만원 정도다. 국내 농가 평균소득에 비해 훨씬 많은 편이다. 김 대표가 이처럼 탄탄하게 토마토 농장을 운영하는 비결 중 하나는 바로 데이터 농업을 실천하기 때문이다. 재배 환경을 우수 토마토 농가의 데이터에 그대로 맞추는 게 핵심이다. 온도와 습도, 일사량을 맞추는 것은 기본이고 이산화탄소 농도를 맞추는 데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식물이 광합성을 하려면 이산화탄소가 필요하다. 요즘은 비닐온실이나 유리온실 안에 이산화탄소를 주입해 작물이 잘 자라게 하는 농법이 많이 활용된다. 문제는 이산화탄소 농도를 얼마로 맞춰야 작물에 가장 좋은지를 파악하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점이다. 그래서 김 대표가 선택한 방법은 국내 우수농가의 데이터를 벤치마킹하는 것이었다.


그가 실력이 검증된 우수농가의 이산화탄소 농도를 따라 하는 것이 가능했던 것은 농촌진흥청이 운영하고 있는 '스마트팜 최적환경설정 서비스' 덕분이다. 이 사이트에 들어가면 토마토와 딸기, 파프리카 등 시설농업 3대 작목에 대한 재배 데이터를 확인할 수 있다. 품목별 전국 우수농가의 데이터를 자신의 농장에 적용할 수 있는 것이다.


김 대표는 "예전에는 온실 내부 이산화탄소 농도를 평균 800PPM 정도로 유지했지만, 우수농가 데이터를 확인해 보니 600PPM으로 오히려 낮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덕분에 연간 1300만~1400만원 정도 들어가던 이산화탄소 구매 비용이 지금은 1000만원 정도로 줄었다"고 말했다. 그는 "더구나 토마토 생산량이 이전에 비해 15% 정도 늘어나 매출과 순이익을 동시에 늘릴 수 있었다"며 "농진청이 제공하는 데이터 도움을 톡톡히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 데이터에 기반한 디지털농업 강화



농촌진흥청이 달라지고 있다. 농업 분야 연구개발(R&D)과 기술 보급, 농촌지도를 핵심 업무로 하는 농진청이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이해 데이터에 기반한 '디지털농업청'으로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올해로 창립 60주년을 맞은 농진청은 한국 농업의 발전과 궤를 같이해왔다. 한국 농업의 아버지로 불리는 고(故) 우장춘 박사가 초대 원장을 맡았던 국립원예특작과학원(옛 중앙원예기술원)에 그 뿌리를 두고 있으며, 어렵던 시절 국민들 배고픔을 해결했던 통일벼 품종 개발의 산실이기도 하다.


정부 조직이지만 행정 업무를 하는 다른 정부 부처와 달리 연구기관에 더 가깝다. 전체 1900여 직원 중 연구·지도직이 1300여 명이고, 그중에서 박사학위 소지자 750여 명을 포함해 석·박사 인력이 1100여 명에 달한다.


이런 농진청이 디지털농업 역량 강화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과거에는 농업 분야에서 디지털 역량을 강화한다고 하면 공학적으로 신기술을 적용하는 것을 많이 생각했다. 첨단 농기계를 개발하거나 작업 자동화율을 높이는 것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농업 분야에서 디지털 역량을 강화하는 것은 그 개념이 완전히 달라져야 한다고 농진청은 보고 있다.


박병홍 농촌진흥청장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특정 분야만이 아니라 농업 전 분야에서 디지털화가 진전될 수밖에 없다"며 "모든 직원이 자신이 맡은 분야에 디지털을 어떻게 접목해 역량을 강화할 것인지를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청장은 "그런 면에서 핵심은 빅데이터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라며 "이를 바탕으로 인공지능(AI)과 로봇기술, 메타버스를 농업에 접목하는 방안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 우수농가 데이터 그대로 재배환경 설정


농진청이 우선적으로 추진하는 일은 데이터에 기반한 스마트팜 기술을 농가에서 바로 적용할 수 있도록 하는 작업이다.


방향은 두 갈래로 이뤄지고 있다. 하나는 비닐온실이나 유리온실 등 시설농업에서 활용하는 '스마트팜 최적환경제어 시스템' 개발이고, 다른 하나는 일반 벼농사나 밭농사에서 적용하는 '노지 정밀농업시스템' 개발이다.


스마트팜 최적환경제어 시스템은 우수농가의 재배 환경 관련 데이터를 수집해 가공한 뒤 농가들이 알아보기 쉽게 제공하는 방식이다. 농진청이 운영하는 스마트팜 최적환경설정 서비스(smartfarm.rda.go.kr) 사이트에서는 완숙 토마토와 딸기, 파프리카를 대상으로 우수농가 데이터를 공개하고 있다. 온도와 습도, 일사량, 이산화탄소 농도 등 재배 환경 요소는 물론이고 작물의 키나 굵기와 같은 생육정보 관련 데이터를 제공하고 있다. 농가에서는 이 사이트를 통해 재배 단계별로 최적의 환경과 생육 정보를 확인할 수 있어 이에 맞추기만 하면 작물을 성공적으로 재배할 수 있다. 스마트팜에서는 재배 환경을 자동으로 설정할 수 있어 큰 리스크 없이 작물을 재배하는 것이 가능하다.


농진청은 이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2017년부터 우수농가를 발굴해 데이터를 수집해왔다. 이를 바탕으로 2019년 최적환경제어 모델을 개발했고 작년까지 2년간 농가들에 직접 적용하며 현장 실증까지 마쳤다.


이혜림 농업연구사는 "예컨대 호냉성 작물인 딸기의 경우 우수농가들이 일반 농가들에 비해 온실 내 기온을 0.5도 정도 낮게 유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우수농가 데이터에 잘 맞춘 농가일수록 생산성과 수익성이 좋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생육 정보도 유용하게 활용된다. 이 연구사는 "우수 딸기 농가들은 잎을 6~7장이 넘지 않게 유지하고 있었다"며 "이런 정보를 바탕으로 딸기 잎 숫자를 잘 관리한 농가들에서는 생산성 향상 효과가 뚜렷했다"고 전했다.


노지 정밀농업 시스템은 현재 콩과 옥수수, 감자, 고구마, 땅콩, 양파, 무, 배추, 상추, 사과 등 10개 작물에 대해 농장과 필지 단위로 작물별, 생육단계별 물관리 최적화 방안을 제안해 주고 있다. 또한 토양의 양분 상태에 따라 비료를 어떻게 사용하면 좋을지에 대한 처방서도 발급해준다.


◆ 농업 분야 공공 데이터의 민간 개방 활성화


농진청은 자체적으로 수집한 데이터의 민간 개방을 확대해 나가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데이터를 직접 가공·분석해 농가에서 쓸 수 있도록 제공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민간에 개방함으로써 훨씬 더 다양한 활용이 가능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공공데이터포털(data.go.kr)을 통해 농업 분야 219개 공공 데이터를 개방하고 있다. 이 사이트에 접속하면 누구나 필요한 데이터를 내려받아 사용할 수 있다. 누구나 응용 프로그램 개발이 가능하도록 오픈 API(Application Program Interface) 형태로 데이터를 사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최근에는 농업 분야 스타트업들이 농진청에서 제공하는 데이터를 적극 활용해 새로운 서비스를 만들어내는 것에 적극적이다. 대표적인 곳이 디지털농업 플랫폼 운영 기업인 그린랩스다. 현재 농진청이 제공하는 농업 기상정보와 토양 관련 데이터를 활용하고 있는 그린랩스는 추가적인 데이터 협력을 추진하고 있다. 최종 목표는 농진청과 소속기관, 지역별 농업기술원 등이 제공하는 모든 데이터를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성제훈 디지털농업추진단장은 "농업 데이터를 민간에서 가공해 새로운 서비스나 비즈니스를 창출하면 농업계 발전에 도움이 되는 것은 물론 고용 증대 등 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농협과의 데이터 협력도 이뤄지고 있다. 농협 조합원들이 사용하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 서비스인 'NH오늘농사'에서는 스마트팜 우수농가 데이터 조회를 바로 할 수 있다. 또한 과수 화상병과 같은 병충해 위험도 예측 정보나 날씨 정보, 농축산물 도매시장 경락가격 정보 등이 앱을 통해 제공된다. 이 밖에도 테크넬(토양 양분 현장진단)과 지농(노지·시설 스마트농업 통합관제플랫폼), 진앱스(한우 농가 맞춤형 사양 솔루션), 아이들(경작지 토양정보서비스) 등의 기업이 농진청에서 제공하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서비스를 개발해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


특히 인공지능(AI)도 적극 활용한다는 방침이다. 딥러닝 기술을 활용해 영상 데이터로 병해충을 조기 판별하는 서비스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게 대표적이다. 최종적으로는 스마트 온실에서 AI에 기반한 무인방제와 생리장해 진단이 가능하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 디지털 트윈·메타버스로 가상의 농장 구축


농진청은 스마트팜에 메타버스를 접목해 새로운 서비스를 만들어 내기 위한 노력에도 힘을 기울이고 있다. 가상의 공간에 구현한 스마트팜인 이른바 '메타팜'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다.


메타팜의 장점은 스마트팜을 운영하는 농민이 재배 환경이나 생육 정보를 미리 입력해봄으로써 향후 작황이 어떻게 될 것인지를 삼차원(3D)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다. 현재 1차적으로 구현된 메타팜은 전남 고흥의 완숙 토마토 우수농가가 모델이다. 이 농가가 현재 설정해 놓은 온실 내 온도와 습도, 이산화탄소 농도 등을 기준으로 값의 변화를 줬을 때 재배 초기와 중기, 후기에 토마토가 어떻게 재배될 것인지를 입체 영상으로 미리 확인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다.


메타팜 개발을 담당한 최현진 농업연구사는 "디지털 트윈 방식으로 구현된 메타팜 농가 숫자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활용도가 커질 것"이라며 "귀농이나 청년농처럼 농업에 경험이 적은 농가에서 작황을 예측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시행착오를 줄이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 연구사는 "입체감뿐만 아니라 소리와 향기까지 함께 경험할 수 있는 4D 방식의 메타팜도 실용화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안정적인 먹거리 공급, 농약·이산화탄소 저감…디지털 농업에 답 있죠


박병홍 농촌진흥청장



"안정적인 먹거리 생산과 탄소 저감을 위해서도 디지털농업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박병홍 농촌진흥청장(55)은 "기존 방식대로 농사를 짓는 관행농업으로는 농약 사용량과 이산화탄소 발생량을 줄이는 데 한계가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우리나라는 농지 단위면적당 농약 사용량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1위를 차지할 정도로 토양 오염이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또한 탄소제로 정책에 따라 농축수산 분야에서 2050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18년 대비 37.7% 감축해야 한다. 이런 도전에 대응하려면 디지털농업에서 해답을 찾아야 한다는 게 박 청장의 생각이다.


박 청장은 "우리나라가 농약 사용량이 많은 것은 여름철 고온과 긴 장마 등 영향으로 병해충이 많이 발생하는 악조건을 극복하기 위한 측면이 강하다"며 "스마트팜 시설농업과 노지 정밀농업을 통해 꼭 필요한 만큼만 농약을 사용할 수 있다면 안전한 먹거리 생산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시간이 지날수록 기후변화에 따른 기상이변이 더 자주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만큼 관행농업으로는 농약 사용량을 줄이기 어렵다"며 "이에 비해 자율주행이 가능한 스마트 로봇방제기는 라이다를 통해 작물의 잎을 정확하게 인식하기 때문에 꼭 필요한 곳에만 농약을 살포할 수 있어 일반적인 방제에 비해 농약 사용량을 40%까지 줄일 수 있다"고 소개했다. 박 청장은 또한 "벼농사에도 노지 정밀농업을 적용하면 물 사용량을 최적화할 수 있어 고인 물에서 발생하는 메탄 등과 같은 온실가스 배출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뿐만 아니라 농가 인구 감소와 고령화 심화라는 농업계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서도 디지털농업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박 청장은 강조했다. 그는 "농촌에서는 고령화가 진전되고 농가 인구가 빠르게 감소하면서 노동력 부족 문제가 심각하다"며 "디지털농업을 통해 농작업의 자동화율을 높이지 않고는 농업·농촌의 지속가능성을 유지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또한 "코로나19 같은 팬데믹(대유행)이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 여파로 국제 곡물시장이 불안정해지는 일이 언제든 나타날 수 있다"며 "안정적인 먹거리 공급을 위한 농업 생산성 향상을 위해서도 디지털농업이 꼭 필요하다"고 그는 강조했다.


박 청장은 디지털농업을 위해서는 농진청 직원들의 디지털 마인드 함양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그는 "농진청은 2020년 10월 디지털농업추진단을 신설한 데 이어 단장에게 청 내에서 생산되는 모든 데이터를 총괄하는 CDO(Chief Data Officer) 역할을 맡기고 있다"며 "청 내 모든 조직에서 디지털농업을 어떻게 추진해 나가는지 정기적으로 체크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또한 AI 아카데미나 데이터 품질관리 교육 과정 등에 직원들을 참여시켜 내부 전문가 육성에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박 청장은 디지털농업 정착을 위해 데이터에 대한 관리 역량을 직원 성과 평가에 반영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내외부에서 공유할 고품질의 데이터를 만든 직원에게는 디지털농업에 대한 기여를 인정해 성과 평가에 반영할 것"이라며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디지털 전환을 위해 노력하는 분위기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정혁훈 농업전문기자


출처: https://www.mk.co.kr/news/economy/view/2022/04/299037/

썸네일이미지: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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