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은 나가서 쇠어도 보름은 집에서 쇠어야 한대요~
가장 큰 보름, 정월 대보름
정월 대보름은 음력으로 첫 보름달이 뜨는 날이에요. 두둥실 떠오른 보름달을 보며 한 해 농사의 풍년과 가족, 이웃의 안녕을 기원합니다. 우리의 세시 풍속 가운데 20% 이상이 이날에 몰려있을 정도로 큰 명절이지요. 그래서 설에 사정이 있어 집에 오지 못했던 사람도 보름에는 꼭 가족과 함께 지내라는 속담이 있어요. 정월 대보름은 재미난 풍습과 별식이 많은 즐거운 날입니다. 올해는 양력으로 2월 14일이랍니다.
농경사회에서 달은 큰 의미를 지닙니다. 달을 보고 계절과 시간의 흐름을 가늠했기 때문이에요. 농사와 땅과 밀접한 연관을 가졌기에 대지의 여신으로 상징화되어 풍년을 기원하는 대상이 되었어요. 그래서 일 년의 첫 번째 달, 보름달이 가장 크게 떠오르면 한 해 농사와 운수를 점치는 세시 풍속이 전해 내려왔던 것이죠. 줄다리기에서 암줄(서쪽 방향)이 이겨야 대풍이 든다거나, 달이 뜨는 동쪽에 문을 내고 짚이나 땔감으로 덮어 만든 달집이 고루 잘 타면 풍년이 들고 악귀가 도망간다고 여겼답니다. 이 외에도 논에 쥐불을 놓기도 하는데, 놀이인 동시에 재로 거름을 만들고 다음 농사를 준비하는 과정이라고 하네요. 그래서 대보름에 집에 돌아오지 않은 사람은 (농사)철을 모르는 사람이라고 했대요. 다리밟기, 지신밟기, 고싸움, 연날리기, 별신굿도 이맘때쯤 이뤄집니다. 모두 가족과 이웃의 건강을 빌고, 액을 막고 복을 기원하며, 한 해의 운수를 점치는 의미를 담고 있어요.
세 집 이상의 이웃집 밥을 먹으면 복이 와요! 오곡밥
대보름에는 행운과 복이 들어오는 의미를 가진 음식들을 먹습니다. 정월 대보름의 별식으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아마도 오곡밥일 거예요. 대보름 전날 저녁, 장수를 기원하며 먹는 오곡밥에 들어가는 다섯 가지 잡곡은 시대별로, 입맛 따라 달라지기는 하지만 대체로 찹쌀, 콩, 팥, 찰수수와 차조 등입니다. 흰 쌀밥보다 잡곡밥이 건강에 더 좋은 것은 다들 아실 텐데요. 오곡밥에 들어가는 잡곡들은 영양상으로 우수한 것은 물론이고, 소화도 더 잘된다고 합니다. 쌀밥에 익숙해진 요즘 사람들은 일부러라도 찾아 먹어야 할 귀한 잡곡들이지요. 이웃집 밥을 많이 먹을수록 복이 들어온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웃과 함께 음식과 더불어 정을 나누라는 선조들의 지혜가 엿보입니다. 또 하루에 9끼를 먹어야 좋다고도 합니다. 한 번에 많이 먹지 말고 조금씩 나눠서 천천히 드세요. 취나물이나 배추, 김으로 오곡밥을 싸먹는 복쌈은 부를 부른다고 믿었어요.
묵은 나물로 더위를 쫓아볼까요? 내 더위 사가라~
보름날 아침이면 처음 보는 친구에게 이름을 불러 대답하면, “누구야, 내 더위 사가라”라고 말하곤 하지요? 더위팔기라고 하는 풍속입니다. 이렇게 더위를 상대방에게 팔면 그 해에는 더위 먹는 일 없이 건강하게 보낸다고 생각했대요. 한여름 땡볕 아래에서 농사일하는 사람에게 더위는 참 무서운 존재였나 봅니다. 묵은 나물(진채(陣菜)) 9가지를 볶아 먹으면 더위를 피할 수 있다고 믿었어요. 제철에 수확해 말려두었던 고사리, 호박, 가지, 시래기, 가지, 버섯, 도라지, 고구마순, 곤드레, 삼나물, 취나물, 고춧잎 등 다양한 나물들로 비타민, 식이섬유, 철분과 같은 영양분을 섭취해 몸에 원기를 회복하라는 깊은 뜻이 담겨있어요.
새벽에는 부럼 까먹고, 아침에는 귀밝이술 한 잔!
눈뜨자마자 견과류를 껍질째 깨먹는 풍습도 전해지지요. 땅콩, 호두, 잣, 은행, 밤과 같은 껍질이 단단한 견과를 깨먹는 소리에 놀라 액운이 도망가고, 부스럼을 의미하는 부럼을 깨 피부병 없이 건강하게 한 해를 보내길 기원한답니다. 지역에 따라 치아 건강에 좋다고 전해집니다. 실제로 견과류에 많은 비타민B1과 불포화지방산은 거칠어진 피부를 윤이 나게 하고, 콜레스테롤을 녹이고 혈액순환이 원활하게 도와줘요. 요새는 하루에 필요한 양만큼 먹을 수 있도록 소량 포장되어 나오는 견과류 제품이 인기가 있죠. 경험을 통해 조상들도 견과류의 효능을 알고 있었나 봅니다.
한자로 명이주(明耳酒)라고 하는 귀밝이술은 아침에 집안 어르신이 데우지 않은 청주를 한 잔씩 나눠주시며, 일 년 동안 귀가 밝아져 좋은 소식만 듣기를 기원하는 풍습입니다. 정신이 번쩍 들고 귓병이 생기지 않는다고 하는데, 과학적으로도 근거가 있어요. 공복에 찬술을 마시면서 혈액순환과 신진대사가 원활해지는 효과가 있지요.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일 년에 딱 한 번 마시는 이 술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행사가 있는 대보름에 서로 즐겁게 어울리며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를 많이 듣고 오라는 어른들의 지혜가 엿보여요.
농경사회가 아니게 된 후부터 세시풍속과 점차 멀어지고 있어요. 과거보다 영양 상태도 좋아졌다고 하지요. 하지만 계절과 자연의 운행에 맞춰 몸과 건강을 준비하는 조상들의 지혜는 아직 배울 점이 많은 것 같지 않으세요? 오는 정월 대보름에는 맛있는 대보름 음식들로 건강한 봄을 준비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