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칼럼함께하는세상]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문화다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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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22-10-27
내용
우리 센터에는 중국, 베트남, 캄보디아 세 나라의 결혼이민여성 자조모임이 있다. 한 달에 한 번 정도씩 모여서 자국 음식을 만들어 먹고 자국어로 얘기를 나눈다. 결혼이민은 가족 단위로 오는 이민이 아니다. 혈혈단신으로 타국에 와서 낯선 가족 틈에 섞이는 일이다. 처음엔 기왕지사 결혼이민을 했으니 한국어를 빨리 배우고 한국 음식 만드는 방법도 빨리 배우는 게 결혼생활에 적응하는 최선이라고 생각했으나 곧 바로잡았다. 삶의 동기는 그렇게 이성적이고 기계적으로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떠나온 가족이 그립고 고향이 아른거리면 병이 나기 마련이다. 그래서 시작된 게 자조모임이다. 자국인들끼리 모여서 고향 음식을 만들고 먹고 얘기하다 보면 기운이 나고 이겨나갈 힘이 생겼다.

10월에는 베트남 자조모임에서 ‘순대죽’을 만들었다. 그동안은 쌀국수, 반미, 분짜 등 알 만한 베트남 음식을 만들어 왔는데 ‘순대죽’은 이름은 모를 것 없으나 상상이 되지 않았다. 요리가 끝날 때쯤 조리실에 들어가 봤다. 냄새가 심상치 않다. 순대를 삶고 있었다. 지름이 10㎝는 돼 보이는 속을 꽉 채운 진짜 내장이었다. 순대 한 점을 먹었다. 낯설지 않았으나 오래전에 미각에서 잊혀진 맛이었다. 반질반질하고 야들야들한 순대를 생각했다가 모양과 맛에서 흠칫 놀랐다. 내 속마음을 읽었는지 한 친구가 말했다. “우리 베트남에선 속에다 당면 안 넣어요. 선지에 채소만 넣어요.” 분명 자랑이었다.

예전에도 그랬다. 쌀국수 가게가 많으니 편하게 그냥 사 먹으라고 했더니 단칼에 잘랐다. “맛없어. 못 먹어.” 그녀들은 국수 한 그릇 먹자고 돼지 등뼈를 우리고 해산물을 잔뜩 넣어서 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끓여댔다. 깔깔 웃어가며 쌀국수를 먹었다. 한 그릇 떠주며 득의양양했다.

중국어 통·번역하는 직원 집에 놀러 갔을 때도 이런 느낌이었다. 중국 청도에서도 한참을 들어가는 시골이었다. 흙벽돌로 똑같이 지은 집들이 늘어서 있고 밀밭도 많았다. 시장 구경을 갔더니 돼지고기를 그냥 쟁반에 올려놓고 팔았다. 걱정스럽게 보고 있는데 직원이 말했다. 고향에선 이렇게 신선한 고기로 매일 볶음요리를 해 먹었다고, 한국으로 시집가서 제일 힘든 점은 돼지고기가 너무 맛이 없는 거라고 했다. 냉장고에 두고 팔아서 그런 거란다.

위생적이고 깔끔한 포장과 매장 전체가 서늘하도록 냉장 진열한 현대식 마트가 그녀들을 사로잡으리라고 생각했던 건 착각이었다. 누구의 입맛에나 착착 감도는 체인점 쌀국수가 그녀들의 입맛에도 맛있으리라고 생각했던 것도 착각이었다. 그녀들은 원재료의 진가를 담은 자신들의 방식을 자랑스러워했고, 유통 과정이 생략된 식품의 신선도에 가치를 두었다.

모든 것이 빠르고 편리하고 깔끔하고 달달하게 둔갑해야 상품 가치가 발생하고 우리는 이것들이 만연한 소비사회를 살고 있다. 빠르지도 편리하지도 깔끔하지도 달달하지도 않은 것들은 어쩌다 미학에서나 만나는 것으로 족하다. 같은 사회를 살고 있으니 모두 다 그럴 줄 알았으나 그녀들은 달랐다. 이 견고한 착각 속에서 그녀들의 생활양식 안에 들어있는 문화다양성을 찾아낼 수 있을까. 참고로 순대죽은 순대를 삶은 국물로 끓인 죽이다. 한 그릇 달라는 말은 못했지만 그녀들이 오늘처럼 당당하게 순대죽을 끓이면 좋겠다.


세계일보 서울구로구가족센터장 정종운 기고
* 기사, 썸네일이미지 출처: https://www.hani.co.kr/arti/society/environment/106443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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