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실가스 주범, ‘소똥’…탄소 꼭꼭 눌러담아 기후위기 해결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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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22-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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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탕수수밭이 아주 멋졌다. 3m 되는 수숫대가 대부분이었고, 두께는 사람의 손목만 했다. 그곳은 테라 프레타, 곧 ‘검은 땅’이었다. 아마존에서 가장 비옥한 땅이었다.”

1879년 미국의 탐험가 허버트 스미스는 기름진 아마존 땅을 보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토질이 좋아서 생산성이 높은 이 땅은 원주민들이 숯이나 짐승뼈 그리고 유기물 등을 넣어 인위적으로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테라 프레타’의 아이디어가 기후위기 시대의 해결책으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해 발간된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보고서는 ‘바이오차’(biochar)를 공식적인 탄소 감축 수단으로 인정했다. 바이오차는 현대판 테라 프레타다. 목재나 분뇨 등 유기성 물질(bio)을 열분해하여 만든 검은 숯(charcoal)이다.


지난 18일 경기 안성시 농협안성목장에서 농협의 지주회사인 농협경제지주가 가축분뇨를 이용해 바이오차를 만드는 시연회를 열었다. 한국수자원공사의 사내벤처인 한빛에코텍이 제작한 바이오차 생산기계는 분뇨를 넣으면 바이오차를 만들어주는 기계다. 소똥이 수분을 빼주는 ‘건조기’를 통과해 바싹 말려진 뒤, ‘열처리장치’를 거치니 두시간 만에 검은 숯이 나왔다. 수분 함량은 60~70%에서 10%대로 낮아졌고 오염물질인 수용성 인도 줄어들었다. 박영무 한빛에코텍 대표는 이 기계에 대해 “축산분뇨 5톤을 넣으면 바이오차 500㎏이 생산되는 소형기계로, 마을 단위로 구입해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기존에 퇴비나 액비보다 인이 줄어들기 때문에 농경지에 뿌리면, 비가 올 때 수용성 인이 하천으로 흘러들어가 녹조를 일으키는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의 똥은 온실가스를 발생시킨다. 축산분뇨에서 나오는 온실가스는 국내 농업 부문 온실가스 발생량의 4분의 1, 축산 부문 온실가스 발생량의 2분의 1을 차지한다. 하지만 이렇게 바이오차로 만들면, 대기로 배출될 탄소가 바이오차에 저장된다. 소똥으로 탄소감옥을 만드는 셈이다. 이길재 농업기술실용화재단 박사는 “바이오차 1톤당 이산화탄소 2톤 정도의 탄소 저감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바이오차는 일반적으로 원예·육묘용 상토(바닥에 까는 흙)나 산성 땅을 개량하는 토양개량제로 쓰는데, 바이오차를 땅에 뿌려주면 투수율이 높아지고 땅심을 돋우게 된다. 자연스레 질소계 비료 투입도 줄어들어, 추가적인 탄소 저감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질소 비료는 온실가스의 일종인 아산화질소의 발생원이다.

이날 안성목장의 한 우방(소를 사육하는 곳)에서는 7개월 된 소 다섯마리가 바이오차 위에서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국립축산과학원이 바이오차를 농장 깔짚으로도 쓰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국립축산과학원의 유동조 축산환경과장은 “바이오차는 수분이 적고, 수분 보유율이 높아 깔짚으로 적당하다”며 “각각 톱밥과 커피박을 이용한 깔짚 환경과 비교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연회에 참여한 한 농장주는 “이번에 바이오차를 만든 축산분뇨는 (관리가 잘된 농장처럼) 호텔에서 나온 등급과 비슷하다”며 “현장에서는 축산분뇨에 깔짚, 돌, 철사 같은 이물질이 나오기 때문에 이 문제를 보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가 화석연료를 이용해 온실가스를 발생시키면, 그중 절반은 각각 육지와 바다에 저장된다.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숲과 나무 같은 것을 ‘카본 싱크’(온실가스 흡수원)라고 한다. 아이피시시는 6차 보고서에서 인위적으로 만든 카본 싱크도 온실가스 저감 효과가 있다고 밝혔다. 대표적인 게 바이오차다. 아이피시시는 바이오차가 해마다 0.6~6.6기가톤(Gt·10억톤)의 탄소를 감축할 수 있을 거라고 판단했다. 최소로 쳐도 연간 한국의 온실가스 배출량과 맞먹는 수준이다. 하지만 바이오차 상용화는 아직 시작 단계다. 아이피시시 추산 탄소 감축 잠재량의 최소값과 최대값의 편차가 큰 이유도 대규모 실증 연구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축산분뇨 열처리 과정 중 화석연료 연소를 통해 배출되는 탄소량보다 바이오차에 저장되는 탄소량이 많아야 탄소 저감 효과가 있기 때문에 세밀한 연구가 필요하다. 이승범 농협경제지주 자원순환팀장은 “축산분뇨를 활용한 바이오차 개발은 세계적으로도 한국이 앞서 있는 상황”이라며 “바이오차의 정의와 기준 등을 확립해 상용화에 이르면 탄소 저감 효과와 함께 농경지 악취, 하천 녹조 제거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겨레 남종영 기자
* 기사, 썸네일이미지 출처: https://www.hani.co.kr/arti/society/environment/106442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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