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연경의행복줍기] 된장찌개를 뚝배기에 담아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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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22-11-16
내용
우리는 살아가면서 지켜야 될 중요한 것들을 먹고살기 힘들어서 또는 너무 바빠서 등 다양한 이유로 무시할 때가 있다. 그중 대표적인 게 격식이다. 물론 격식에 치우쳐 내용이 소홀해지면 안 되지만 격식은 품격을 만든다. 중견 탤런트 A에게는 가난한 어린 시절이 있었다. 친구들은 당근이나 오이 그림이 그려진 알루미늄 도시락에 흰 쌀밥을 담아올 때 그는 시커먼 비닐봉지에 넣어 온 옥수수와 감자로 점심을 때워야 했다. 그래도 A의 어머니는 자식들에게 꼬박꼬박 잠옷을 입혔다. 가게에서 산 근사한 잠옷일 리는 없었다. 대개 낡은 이불 호청으로 만들었고 운이 좋을 때는 잘사는 친척집에서 계절이 바뀌었다는 이유로 버려진 커튼이나 테이블보로 밤새 재봉틀을 돌려 만든 것이다. A의 어머니는 엄격하게 잠잘 때만 입게 했다. 하루 종일 뛰어 놀다 땀에 전 옷 그대로 잠이 들었던 A는 잠옷을 입고 잘 때부터 동화 속 왕자가 된 듯한 기분이었다. 그 잠옷 덕분에 가난에 주눅들지 않았고 장조림과 계란말이만 싸 오는 부잣집 짝꿍한테도 당당할 수 있게 되었다. 어머니가 원한 것도 바로 그것이었다. 격식이 힘이 된 것이다.

요즘은 결혼이 늦어지면서 부모로부터 독립해 혼자 사는 청년이 늘어나는 추세다. 혼자 살면 무질서의 함정에 빠지기 쉽다. 불규칙한 식습관이 건강을 해치고 무력하게 만든다. 그런데 아주 잘 지내는 경우가 있다. 대충 인스턴트 식품으로 해결하지 않고 꼬박꼬박 제대로 밥 해 먹고 커피 한 잔을 마셔도 반듯한 커피잔에 잔 받침까지 갖추며 손님을 대접할 때처럼 자신을 대접하며 살아갈 때다. 이렇게 격식을 갖추고 살면 쉽게 지치지 않는다.

음악회 갈 때 등산갈 때 도서관 갈 때 옷차림이 같을 수는 없다. 분위기에 맞게 제대로 갖춰 입으면 예의 있게 보이고 즐거움이 늘어나고 안전하기까지 하다. 상대방에게 좋은 인상도 주게 된다. 음악회 갈 때 반바지에 슬리퍼를 끌고 가거나 등산 갈 때 구두 신고 스커트 차림이면 웃음거리가 되기 쉽고 보는 사람도 매우 불편하다. 격식을 갖춘 옷차림을 말할 때 흔히 ‘TPO를 지키자’고 한다. 시간(Time), 장소(Place), 상황(Occasion)이다. 시간과 장소와 상황에 맞게 옷을 입으면 격조 있게 보인다.

옷차림뿐 아니라 마음의 격식도 중요하다. 상황에 따라 존중과 겸손을 우선으로 해야 할지 양보와 배려에 비중을 두어야 할지 잘 생각해야 한다. 말의 격식은 더욱 중요하다. 말은 마음에서 나오고 그 사람만의 독특한 향기다. 상대방의 눈을 바라보고 부드러운 음성으로 명확하게 발음하고 언어 선택에 신중하고 특히 대화 중 휴대폰 들여다보는 건 경계해야 한다. 연말이 가까워 올수록 모임이 늘어난다. 즐겁고 유쾌한 만남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장소와 상황에 맞는 격식이 필요하다. 된장찌개를 유리그릇에 담는 순간 이미 구수한 맛은 달아난다. 된장찌개는 뚝배기가 제맛이다.

세계일보 조연경 작가 기고
* 기사, 썸네일이미지 출처: https://www.segye.com/newsView/20221115518748?OutUrl=na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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